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사건 발생 불과 사흘 전에 아버님께서는 손주를 보셨습니다. 생전 사지도 않으셨던 복권도 사시면서 그렇게 기뻐하셨는데…."
지난 10월29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민원'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40대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끝내 사망한 70대 아파트 경비원의 큰아들 A씨는 21일 열린 첫 재판에 참석해 흐느끼며 엄벌을 호소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이날 오전 11시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모씨(45)의 1회 공판기일 심리했다.
A씨는 재판 막바지에 발언권을 얻어 준비해 온 한 장의 호소문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내려갔다. A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평생 가난이 원수'라시며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경비원일을 수십년간 계속하며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자 했다"면서 "그 일을 말리지 못해 후회된다"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A씨는 "사건 발생 3일 전에 아버지는 갓 출산한 손주를 보며 너무 기뻐하셨다"며 "그러나 사흘 뒤 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고 흐느꼈다. 그러면서 최씨를 향해 "과연 아버지가 돌아가실 만큼 잘못하셨는지 묻고 싶다"면서 재판부에 최씨를 엄벌에 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A씨는 사건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최씨가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범행을 시인하지 않았다"면서 "심신미약을 내세워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엄벌을 내려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재판부와 A씨 따르면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이후 법원에는 3600여명의 시민이 최씨의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2박스 가량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지난 10월29일 오전 1시46분쯤 술을 마신 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경비실로 찾아가 근무 중이던 경비원 A씨(71)의 얼굴과 머리를 발과 주먹으로 때려 뇌사에 빠뜨린 뒤 끝내 숨지게 만든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씨의 혐의는 중상해→살인미수→살인으로 두 차례 변경됐다.
애초 경찰은 최씨를 '중상해' 혐의로 구속했다가 ΔA씨가 뇌사에 빠진 점 Δ폭행이 얼굴과 머리에 집중돼 반복적으로 이뤄진 점 등을 토대로 최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혐의를 '살인미수'로 변경해 송치했다.
하지만 A씨가 뇌사 25일 만에 사망하면서 최씨의 혐의는 다시 '살인'으로 바뀌게 됐다. 최씨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A씨는 지난달 23일 병원 중환자실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
최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가 '살인'으로 이어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하늘색 수의를 입고 검은색 뿔테안경을 쓴 최씨는 A씨가 호소문을 읽을 때도 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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