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벤투는 이승우 카드를 안 쓸까... 조별리그서 1분도 출전하지 못해...
이승우, 기용 안 되자 물병 걷어차...전술적 이유 외 힘 겨루기 측면도...
17일 한국과 중국의 2019 아시안컵 축구대회 C조 조별리그 3차전 후반 막판. 2-0 승리가 유력해지자 한국 벤치는 마지막 세 번째 교체 카드로 구자철(30·아우크스부르크)을 호출했다. 아울러 몸을 풀던 나머지 선수들에게는 벤치로 철수할 것을 지시했다. 그 순간 워밍업을 하던 이승우(21·헬라스 베로나)가 수건을 집어 던지고 물병을 발로 찼다.
벤치로 향한 이승우는 정강이 보호대를 꺼내 집어던지기도 했다. 벤치 분위기를 살피던 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 장면을 말없이 지켜봤다. 이승우의 행동은 자신을 선발은 커녕 교체 카드로도 활용하지 않은 감독에 대한 불만 표시로 읽혔다.
부상에서 갓 회복한 지동원(28·아우크스부르크) 등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도 간간이 교체 출전했지만, 이승우는 조별리그 세 경기 동안 1분도 출전하지 못했다. 대표팀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통틀어 아직 그라운드를 밟지 못한 선수는 이승우 뿐이다. 최근 소속팀에서 6경기 연속 선발출장했고, 세리에B(이탈리아 2부리그) 무대에서 득점포까지 터뜨렸던 터라 서운할 만하다.
벤투 감독은 왜 이승우를 기용하는데 소극적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벤투 감독이 쓰는 4-2-3-1포메이션에서 이승우는 2선 공격수로 분류된다. 그런데 포지션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우위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게 벤투 감독의 냉정한 평가다. 게다가 스페인 명문 FC 바르셀로나(스페인) 유스팀 시절 수비 가담보다는 골 넣는 데 집중하며 성장한 탓에 상대적으로 수비력이 부족한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벤투 감독이 선수를 기용하는데 일부 감정적인 요소가 개입된 정황도 있다. 12일 키르기스스탄전(1-0승) 당시 벤투 감독은 교체 카드를 두 장만 썼다. 마지막 한장을 버리면서도 이승우를 외면했다. 또 중국전에선 후반 43분 마지막 교체 카드로 구자철을 내보냈다. 벤투 감독의 결정은 ‘베테랑은 시간끌기용 교체카드로 쓰지 않는다’는 축구계 불문율에도 어긋난다.
이승우를 외면하는 벤투 감독의 행동에 대해 선수와의 갈등이 아닌, 대한축구협회에 던지는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우는 지난해 손흥민(27·토트넘), 조현우(28·대구)와 ‘한국 축구 인기 삼대장’으로 불리며 A매치 흥행을 견인했다. 득점력과 흥행력을 모두 갖춘 이승우의 출전 여부는 벤투 감독 부임 이후 줄곧 축구협회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A매치는 물론, 아시안컵을 전후해서도 “1분이라도 좋으니 이승우를 경기에 내보내면 안 되겠느냐”는 축구협회 쪽 의사가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벤투 감독에게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벤투 감독은 아시안컵 선수 기용을 통해 ‘특정 선수 출전을 압박하면 오히려 더 기용하지 않는다’고 경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선배 축구인들은 이승우의 이번 행동에 대해 “잘한 일은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한 번쯤은 그럴 수 있다”며 이해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전 골키퍼 김병지(49)는 “아마도 물병 한 번 안 차 본 선수는 없을 것”이라며 “감독에 대한 감정 표출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화가 났을 수도 있다. 행위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선수들은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고 말했다. 기성용(30·뉴캐슬)은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이)승우가 어떤 마음인지 이해된다. 경기에 나서지 못한 아쉬움이 있을 것”이라며 “아직 어린 선수다. 잘 타이르고 이야기 나눠보겠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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