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 화물터미널 막아… 광주·울산도 1주일째 배송 안돼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찾으란 말인지…."
28일 저녁 7시 경북 경주시 현곡면 CJ대한통운 서브터미널. 김모(35)씨가 사람 키만큼 쌓여 있는 택배 상자 더미를 뒤지다 한숨을 크게 쉬었다. 김씨는 "다음 달 가족 여행을 가서 쓸 용품을 주문했는데 기다리다 지쳐 직접 찾으러 왔다"고 했다.
이 터미널은 경주 전역에 배달될 CJ대한통운의 택배 물건을 받아 택배 기사에게 전달하는 곳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 노조) 700여 명이 지난 21일부터 CJ대한통운을 상대로 '노조를 인정하고 교섭에 나오라'며 파업에 나선 뒤 이 지역 택배 배송은 일주일 넘게 사실상 마비됐다. 일부 노조원은 터미널 입구를 막고 회사 측이 대체 차량을 투입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 때문에 28일 현재 경주터미널에도 1만5000여 개의 상자가 발이 묶여 있다. 경남 창원, 울산, 광주광역시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 27일 경북 경주시 현곡면 CJ대한통운 터미널. 한 시민이 택배 상자 더미 속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파업으로 인해 배송받지 못한 자신의 상품을 찾고 있다
택배 노조는 28일 저녁 "회사 측이 파업 지역 택배 접수를 중단해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29일부터 배송 업무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 측은 동시에 "(이번 파업에 이어) 2차 총력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혀, 배송 문제가 실제 얼마나 해소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택배 기사와 직접 계약을 맺고 있는 대리점주들은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파업에 참여한 기사에게 서약서 등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사들이 이에 응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택배노조는 지난 6월 30일~7월 18일 보름 넘게 배송 일부를 거부하다 복귀를 선언했지만 이후에도 한동안 추가 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배송 작업을 중단한 바 있다. 파업 참가 700여 명은 CJ대한통운 일을 하는 기사 전체(1만8000명)의 3.8%다. CJ대한통운은 파업 지역으로 가는 택배 접수를 제한한 상태다. 국내 택배 시장 1위인 CJ대한통운의 시장 점유율은 48%다.
최근 경주 터미널엔 본인의 택배 물건을 찾으려는 고객의 발길이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7일 7개월, 3세 아이와 함께 온 30대 주부는 "날씨가 추워져 아이들을 위해 온풍기를 샀는데 더는 기다리기 어려워 왔다"고 했다. 강모(58)씨는 "일주일 넘게 택배가 안 와 기사한테 전화했더니 '터미널에서 직접 찾아가라'더라"며 "내 돈 내고 받는 택배인데 여기까지 와서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조는 “택배 못 나간다” 시민은 “내 택배 못 찾겠다” - 지난 27일 경북 경주시 현곡면 CJ대한통운 터미널 입구에서 민노총 산하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배달 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다(위 사진). 같은 날 택배를 받지 못해 터미널에 직접 온 시민들이 택배 상자 더미에서 자기 물건을 찾고 있다
경주 시민 최모씨는 "지난 20일 아이 장난감을 주문했는데 계속 배송이 안 됐다"며 "택배 기사에게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연락했더니 '나는 모른다'고 한 뒤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물건을 찾지 못하고 헛걸음하는 경우도 많았다.
입구를 막고 있는 노조원들은 상하면 배상을 해줘야 하는 채소나 과일같이 오래 보관할 수 없는 식품에 대해서만 대체 기사가 배달해주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터미널 관계자는 "노조원이 터미널 입구에서 화물칸을 일일이 검색해 식품을 실은 차만 통과시켜 주고 있다"고 했다.
택배가 수만 개씩 발이 묶인 건 CJ대한통운의 270개 터미널 중 4개뿐이지만 경기도 성남, 대구, 충북 청주 등에서도 일부 기사가 배달을 거부했다. 전국택배대리점연합 홍우희 부회장은 "파업 지역으로 택배를 보내야 하는데, 발송이 안 돼 신뢰를 잃다가는 기업 고객 거래가 자칫하면 끊길 지경"이라며 "이 지역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웃돈을 주고 다른 택배에 물건을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택배 노조의 핵심 요구는 원청자인 CJ대한통운이 노조를 인정하고 직접 교섭에 나서라는 것이다. 택배 기사는 학습지 교사처럼 겉으로는 근로자처럼 보이지만 회사와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 계약을 맺는 '특수형태 고용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택배 기사를 근로자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며 택배 노조 설립 신고를 받아줬다. CJ대한통운은 '택배 기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자'라며 지난 1월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CJ대한통운은 본사와 대리점이 택배 집하·배송·보관 등을 위한 계약을 맺고, 대리점은 사업자 신분인 택배기사와 계약하는 구조다. CJ대한통운 측은 "택배 기사의 계약 상대가 대리점인 만큼 본사는 교섭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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