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 케플러가 죽기 전까지 매달렸던 일
조회수 : 11 | 등록일 : 2023.01.18 (수)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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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5세기,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생각을 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도
지구가 완벽한 원 궤도를 따라서 공전한다고 믿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화성 관측자료를 10년 이상 연구하며
"천체는 타원 궤도를 그리며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이를 논문 <신천문학>(Astronomia nova)에 담아냈다.



 

케플러는 지동설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학적 근거들은 너무 복잡해서 동료 과학자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다.
과학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대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케플러는 천계에 대한 편협한 시야를 넓히고 이해시키는 일이
과학이 아니라 이야기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단순하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 먹는다.



 

1609년, 케플러는 소설 <꿈>(somnium)을 완성했다.
이 책은 달나라로 항해를 떠난 어느 천문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달에 도착한 젊은 탐험가는 '지구가 달 주위를 공전한다'고 생각하는 달에 사는 주민들을 만난다.




 
당시 사람들은 이미 '달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즉, 케플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건네는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은
달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달 주민들의 믿음만큼이나 잘못된 것은 아닐까?"





케플러는 자신의 논문과 소설 원고를 들고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석했다.
도서전에 온 다른 참석자들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실 수학자'이자 저명한 천문학자인 케플러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고,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만큼 박식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일이 잘못 풀려나갔다.




 
소설 <꿈>의 내용이 대중에게 퍼져나가면서 이야기는 여러 형태로 모습이 바뀌었고
1615년 무렵에는 책을 안 읽는 사람과 글을 모르는 사람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본질이 훼손되어 껍질만 남은 이야기는 케플러의 작은 고향마을에도 이르렀다.

<꿈>에 담긴 과학과 상징, 우화적 기교를 마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꿈>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사람들은 자기 마을이 배출한 황실 수학자 케플러와
소설 속 '달나라를 탐험하는 천문학자'를 동일시했다.




 
나아가 케플러의 어머니도 <꿈>에 등장하는 '천문학자의 어머니'와 동일시되었다.
이야기속의 '어머니'는 약초꾼으로, 정령을 소환하여 아들이 달로 항해하는 일을 돕는다.
케플러의 어머니 또한 실제로 약초꾼이었다.

미신에 굶주린 작은 시골 마을,
좋지 않은 성격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었던 케플러의 어머니,
소문으로 떠도는 <꿈> 이야기 속에서 '어머니'가 벌이는 갖가지 주술,
그리고 "아들부터가 자신이 쓴 이야기에서 어머니를 마녀로 묘사하지 않는가?"라는 악의적 억측들이 맞물리면서




 
케플러의 어머니는 마녀로 고발당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수만 명의 여성들이 마녀재판을 받았는데,
실제로 인구가 많지 않은 케플러의 고향에서도
어머니가 마녀로 고발당하기 몇 주 전에 여자 여섯 명이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다.

어머니가 마녀로 고발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케플러는 6년 동안 이어진 어머니의 마녀재판에 헌신적으로 매달렸지만,
결국 어머니는 옥고를 치르던 중 사망한다.



 
이후 남은 생애 동안 케플러는 <꿈>에 주석을 다는 일에 매달린다.
이야기의 상징과 은유에 대해 문장마다 과학적 근거를 정확하게 설명하여
미신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완전히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꿈>에는 본문과 맞먹는 분량의 각주 223개가 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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