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 53명에게 난징을 따일 뻔했던 명나라 레전드
조회수 : 15 | 등록일 : 2023.02.19 (일) 21:44

프로필사진
레벨아이콘 강철고우추 | 등록된 오늘의 한마디가 없습니다.





 


명나라 가정왜란 사건


 

때는 1555년 6월 7일






 


왜구 53명이 저장시에 상륙했음


 

그리고 본격적으로 약탈했는데








 



이 지도처럼 종횡무진 빠르게 움직이며 불태우고 약탈함


 

53명의 왜구에 맞서 명나라 대군이 몰려와 이들과 싸웠는데


 

4~5천명의 병사와 장군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고 후퇴함


 


????


 

아무리 판소 쓰고 싶어도 그렇지 왜구 53명이서 무협지 판소를 찍는다고? ㅋㅋㅋ 개구라 치지마라










 


진짜로 실화이고 중국애들도 인정하는 사건임


 

...


 

이 왜구들은 조기 진압을 위해 모인 군을 물리치고 아예 명나라 초기 수도였던 난징까지 돌격함


 

그러자 명나라는 급히 난징의 문을 닫고 백성들에게 스스로를 지키라고 명령함


 

... 제국이 왜구 53명에게 털린 것도 어이가 없는데 할 수 있는게 문을 걸어잠그고 존버하는게 전부였음


 

그럼 왜구들은 뭐했냐?







 


2일 동안 난징 성 밖에서 머물면서 성벽을 타고 공격하려고 했고 


 

명나라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성벽을 넘으려는 왜구들을 막음


 

왜구들 깡은 진짜..







 

근데 뭐 겨우 53명으로 그게 가능할리가 없고 그냥 발 돌려서 우진을 통해 돌아가고 있었고

 
때마침 도착한 다른 명나라 대군에 의해 토벌되어 겨우 잡히면서 수도를 벌벌 떨게 만든 왜란이 끝남


이 때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같은 해인 1555년 6월에 제주도에서 1차, 2차 을묘왜변이 벌어짐

 

이 때 5~7천명 규모의 왜구들이 들이 닥쳤고 장수인 강진형과 조선군이 수세에 몰려 화친까지 제의하며 벌벌 떨 때

 

문신인 이윤경과 이준경이 나타나 사기를 올리고 맞서 싸우게 하여 1차 을묘왜란을 어찌어찌 물리치고

 

바로 들이 닥친 2차 을묘왜란 때에는 제주 목사 김수문와 조선군이 필사의 노력 끝에 왜구를 물리침

 

특히 1천명의 왜구가 모인 진을 향해 4인이 말을 타고 적진을 누비고 70명의 병사가 엄호하며 포위 섬멸진을 펼쳤고

 

진짜로 1천명의 왜구를 고작 74명이서 물리치는 믿지못할 전과를 세우기도 함

 

니탕개의 난과 이 일을 계기로 조선식 방어 체제인 제승방략이 승인 되었고 비변사가 상설화됨

 

나름 성공적인 방어 전술이라서 최대 5만명 정도의 군사에 대응할 수 있다고 보았음





 

엌ㅋㅋㅋㅋ 그럼 20만명 쌩 드랍하면 되겠지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그러니까 30여년 전에 우리가 고작 50여명에게 개 털릴 때 

 

저 멀리 시골 중의 시골인 곳에서 수천을 상대로 그렇게 잘 싸운 강군인 조선군이ㅋㅋㅋㅋ

 

왜군의 공세로 수도가 털리고 왕이 런쳤다고? ㅋㅋㅋㅋ

 

이새끼들 대체 뭘 원하길래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원군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는거냐 ㅋㅋㅋㅋ 






 

아니 시발 얼마전에 내전 끝낸 새끼들이 20만 단위로 폭탄 드랍을 했다고요!!!!




댓글 작성 (0/1000) 비밀글 (체크하시면 운영자와 글 작성자만 볼 수 있습니다)

0개의 댓글과 0답글이 있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