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알프스 산맥과 아르노 늪지대를 차례로 돌파하는, 필멸자가 해냈다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업적들을 이룩한 한니발은
무적인 것만 같았던 로마군을 트레비아 전투와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에서 연달아 처참히 박살내고
반쯤 무주공산이 된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서 신나는 "쥐불놀이"를 저질렀다.
카르타고 본국에서도, 바르카 가문의 스페인 총독부에서도 그 어떤 보급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휘하 병력을 먹일 식량을 자체조달하면서, 로마군의 보급품 조달도 방해하는 일석이조였지만
그렇다고 결코 무지성 약탈을 자행한 건 아니었다.
지혜로운 한니발은 로마인들이 직접 이주한 직할 식민도시들과, 로마에 가장 충성스러운 동맹시들을 상대할 때만
성난 켈트족 전사들의 고삐를 풀었다가, 로마의 상전행세에 불만이 많은 지역을 통과할 때는 다시 단단히 쥐었고
과연 이러한 조치는 효과가 있었다.
전사자의 대부분은 켈트족 전사들이며, 원정군의 중추인 바르카 가문의 사병들은 건재했다고 하나
한니발 원정군도 아무리 연전연승이라지만 전투가 누적되면서 꾸준히 병력손실이 생기고 있었으나
점점 한니발의 휘하로 들어오는 이탈리아 현지인 병사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병력까지도 현지조달에 성공한 것이다.
한니발은 심지어, 오랜 세월 로마의 동맹이었던 에트루리아인들에게서도 비록 소수이지만 병력을 구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세워진 한 묘비에서,
묘비문이 사실이라면 당시로서는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장수한 한 노인은
그의 기나긴 생애에서 가장 큰 영광은, 젊어서 한니발 원정군에 들어가 전설의 명장과 함께한 것이었노라고
에트루리아어로 자랑스럽게 새겼다.
[라르트 레테의 아들 펠스나스는 카푸아에서 10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한니발의 군대에서 싸웠노라.]
자, 여기서부터는 솔직히 순 펨붕이 망상딸이지만, 저 노인이 정말로 106살까지 산 살아있는 역사였노라고 믿어보자.
그리고 106살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한니발의 휘하에서 싸웠음을 인생 제일의 자랑이라 여길 정도였다면
한창때였던 20대 초중반에, 저 위대한 칸나이 전투 - 기원전 216년 - 에서 싸웠으리라고 가정해보자.
그는 기원전 211년, 한니발이 처음이자 마지막 로마 진군을 감행했을 때,
존경하는 장군을 따라가 로마 성문 앞에 섰었을 것이다.
기원전 202년, 아프리카에 젊은 스키피오가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들은 한니발이
어린 시절 바알 신께 바쳤던 로마 멸망의 맹세를 접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함대에 올랐을 때
십수년을 함께한 전우들과 헤어져,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함대를 바라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섬겼던 가장 위대한 장군이, 자마에서 끝내 패배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것이다.
노년의 한니발이 머나먼 동쪽 비티니아에서 "로마인들이여, 어찌 병든 노인의 죽음조차 기다려주지 못하는가?" 란
유언을 남기고 독배를 들어 최후를 맞았을 때도,
그리고 더욱 세월이 흘러, 기원전 146년에 카르타고가 불길 속에서 장엄한 종말을 맞이하고
로마 원정군 사령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런 운명을 맞으리로다." 며 눈물 흘렸을 때도
100살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 살아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뽕에 잔뜩 취한 펨붕이 망상일 뿐이지만, 한 가지만은 역사가 전하는 분명한 사실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의 휘하에서 싸웠던, 그리고 그것을 죽는 날까지 자랑스럽게 여겼던
한 에트루리아 노인이 있었노라고.
- 필립 프리먼 저 "한니발 : 로마의 가장 위대한 적수"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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