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웨이웨이 (Ai Weiwei) 1957년 5월 18일 출생출생지 : 중국
직업 : 예술가
....예술가? 예술가면 저런거 해도 되는거냐고 묻는다면
...음......나도 모른다
일단 그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1957년 5월 18일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인 표현을 정부가 어떻게 강압적으로 탄압을 하는지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 덕분이다.
그의 아버지 '아이칭 (Ai Qing)'은 중국에서 아주 유명한 시인이었는데
1958년 그가 태어난지 1년정도 되었을때
공산주의자 모임의 적으로 간주되어 베이징으로부터 추방을 받게 된다.
그로인해 아이 웨이웨이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시해지 (Shiheji)'에서 지내게 되고
1975년이 되어서야 다시금 베이징으로 돌아오게 된다.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Beijing Film Academy'에 입학을 하지만
천재에게 평범한 수업은 맞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학교 프로그램에 지겨움을 느끼고 대신에 전위적인 예술활동을 펼치는 그룹
'STARS'
를 결성하여 활동하게 된다.
1981년부터 1993년까지는 미국, 뉴욕에 거주를 하면서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과 'Parsons School of Design'
에서 강의를 들었으며 행위예술과 개념 미술 작품의 창작을 하기도 하였다.
그때 그는 미국의 전설적인 시인 'Allen Ginsberg'등과 같은 인물과의 친분을 쌓기도 하였다
1993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끔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그는
베이징의 예술 분야릉 뒤흔들어보겠다는 야망을 품게되었고
베이징에
'East Village'
를 조성하여 예술가들의 신념을 일깨우도록 이끌기도 했으며
젊은 예술가들을 다룬 세권의 책
Black Cover Book (1994), White Cover Book (1994), Grey Cover Book (1994)을 편찬 하기도 하였고
스스로 예술활동을 펼쳐가기도 하였다.
그가 펼치는 대다수의 작품 및 예술활동은
대게 자신의 정부를 비판하고 탄압에 반대하는 반정부 주의의 입각한 내용이었다.
2000년대에 그는 앞서 보여줬었던 사진인
라는 작품을 선보이며 비판적인 예술활동을 이어 갔으나
그에 따른 논란과 혹평 또한 이어졌는데
상하이에서 열린 이 전시는 단 하루만에 취소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2003년엔
'Forever Bicycles' 라는 전시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팬을 모으기도 하였고
언론의 관심을 더욱이 이끌기도 하였으며 'Fountain of Light (2007)'
등의 작품을 차례로 선보이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고국인 중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주경기장의 디자인을 세계적인 건축가 듀오
'Jacques Herzog & Pierre de Meuron'와 함께 맡아
의 디자인을 설계하기도 하지만
올림픽 경기장을 위해 중국의 건축눌들을 무분별하게 부수는것과
같은 해에 일어났던 '스촨성 지진'에 대한 안일한 대처에
환멸을 느낀 그는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내면을 폭로하는 등과 같은
올림픽을 반대하는 비판을 하게 되었고
결국 그는 올림픽 이전과 이후에도 전혀 바뀐것이 없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디자인한 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참고로 위 사건 때문에 당시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 총책임자였던
세계적인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사퇴를 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쓰촨성 지진 당시,
부실한 학교의 건축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음을 SNS와 언론을 통해 알리고
비판을 하였는데,
이로 인해 그는 세계적인 언론과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긴했지만
그의 집으로 무단 침입한 중국 당국의 경찰로부터
뇌출혈을 동반한 무자비한 폭행에 당하게 된다.
또한 2009년에는 상하이에 새롭게 지은
아이 웨이웨이의 스튜디오가 중국 정부의 승인 없이 지어졌다는 이유로
소송이 진행되었고
26억원 가량이 투자된 그의 스튜디오는
결국 2011년에 강제 철거 된다.
그는 이러한 억울한 감정을 알리기 위해
'Ai Weiwei : Never Sorry'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1년에
다시금 중국 정부는 탈세의 이유로 엄청난 추징금과 함께
그를 비밀스러운 장소에 80일 가량 감금을 하였고
이로 인해 세계의 많은 인권 단체와 예술가 단체들은 그의 석방을 위해
퍼포먼스와 탄원서등으로 갖은 노력을 하였고
결국 그는 보석금을 내는 조건으로 풀려났으나
과거에 그가 보였던 SNS 활동을 전면 금지당하게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풀려난 아이 웨이웨이이지만
여전히 중국의 집중적인 감시와 예술적 활동에 대한 제약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미국과 함께 'Landmark' 전시를 선보이고 있으며
'Berlin University of Arts'에서는 교수로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2011년에는 영국의 미술 월간지
'Art Review'는
아이 웨이웨이를 올해의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 가운데
1위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나는 다음 세대가 내가 이미 싸운 그것들 때문에 나와 똑같이 싸워야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Ai Weiw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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